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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관심 판례

제목

의식불명환자의 치료중단...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기각 / 인정사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0.03
첨부파일0
조회수
2293
내용

 

서울서부지법 2008.7.10.  2008카합822 결정 【무의미한연명치료행위중지등가처분】 항고 〈인공호흡기 제거청구 사건〉
[각공2008하,1616]

【판시사항】
[1] 치료 중단으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도출되는지 여부(소극)
[2] 의식불명환자의 치료 중단에 대한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 고려하여야 할 요소
[3]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등의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 대하여 그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사안에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하여 기각한 사례

【결정요지】
[1] 무릇 의료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승낙에 의하여 시작되고 종료되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편,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즉 환자 스스로 의료행위의 시작과 종료를 결정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서, 치료를 계속하지 아니하는 경우 단지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거나 생명에 위험이 없는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 것이 예측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권 또는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인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 보호의 원칙을 고려하여 볼 때 그와 같은 경우까지도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령 등을 통하여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이나 시행 방법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고, 사전적·사후적 통제 시스템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갖추어지는 경우에 그와 같은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까지도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직접 도출된다고 할 수는 없다.
[2]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있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생전의 의사표시, 질병 등에 대한 환자의 태도,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관 등을 종합하여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지만, 이때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추상적 의사가 아니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이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서는,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그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인바,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 환자가 받게 될 통증, 후유증 등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의사를 추정하여야 한다.
[3] 소위 ‘식물인간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등의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에 대하여 그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행위의 중지를 구하는 가처분을 신청한 사안에서,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이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만을 할 수 있고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 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사정만으로는, 환자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혹은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 본인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인정할 수도 없다고 하여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사례.

【참조조문】
[1]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 [2]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 [3]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

【전 문】
【채 권 자】 채권자 1외 4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신현호)

【채 무 자】 채무자 학교법인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신동선)

【주 문】
1. 채권자들의 주위적 신청과 예비적 신청을 모두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채권자들이 부담한다.

【신청취지】 주위적으로, 채무자들은 채권자 1에 대하여 인공호흡기 적용, 약물투여 및 영양·수분 공급 등 일체의 연명 치료를 하여서는 아니되고, 채권자 1이 심정지에 이른 경우 응급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서는 아니되며, 채권자 2, 채권자 3, 채권자 4, 채권자 5의 연명치료 중단요구를 거절하거나 방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하며, 채무자들이 위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각 위반행위마다 채권자들에게 각 1,000,000원씩을 지급하여야 한다.
예비적으로, 채무자들은 채권자 1이 퇴원하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되고, 집행관은 위 명령의 취지를 적당한 방법으로 공시하여야 하며, 채무자들이 위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각 위반행위마다 채권자들에게 각 1,000,000원씩을 지급하여야 한다.
【이 유】
1. 기초 사실
이 사건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에 의하면 다음의 각 사실이 소명된다.
가. 당사자들의 지위
(1) 채권자 1은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고 채무자 학교법인 산하 신촌세브란스 병원(이하 ‘이 사건 병원’이라 한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고, 채권자 2, 채권자 3, 채권자 4, 채권자 5(이하 ‘나머지 채권자들’이라 한다)는 채권자 1의 자녀들이다.
(2) 채무자 학교법인는 이 사건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고, 채무자 2는 이 사건 병원의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채권자 1의 주치의이다.
나. 이 사건 치료 및 환자( 채권자 1)의 상태
(1) 채권자 1은 2008. 2. 18.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 사건 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 등으로 인하여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었다.
(2) 이에 따라 채권자 1은 2008. 2. 18. 무렵부터 이 사건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에서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이하 ‘이 사건 치료’라 한다)를 받고 있다.
(3) 현재 채권자 1은 소위 ‘식물인간 상태(Vegetative state)’로서,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Eye opening)과 목적 없이 팔을 펴는 정도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Abnormal flexion to pain)은 있으나,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은 전혀 없는 상태이다.
2. 채권자들의 주장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불가능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이 사건 치료는 채권자 1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 징후만을 단순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므로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채권자 1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생명권으로부터 도출되는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치료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바, 채권자 1이 평소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럽게 죽고 싶어 하였으므로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 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채권자들은 설령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채권자 1에 대한 치료와 관련하여서는 가족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의 권리 및 이해관계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야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을 침해하므로 나머지 채권자들도 독자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채무자들에 대하여 주위적으로는 채권자 1에 대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고, 예비적으로는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의 방해 금지를 구한다.
3. 이 사건 가처분의 성질
살피건대, 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소송은 본안소송의 판결의 집행을 용이하게 하거나 확정판결이 있을 때까지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현상을 동결하거나 임시적 법률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재판이다.
그 중 민사집행법 제300조 제2항에서 규정하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은 다툼 있는 권리관계 또는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현상의 진행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권리자에게 현저한 손해 또는 급박한 위험이 발생될 수 있어 장래 확정 판결을 얻더라도 그 실효성을 잃게 될 염려가 있는 경우에 권리자에게 임시의 지위를 주어 그와 같은 손해나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보전처분으로서, 본안소송에 의하여 권리관계가 확정될 때까지 가처분권리자가 현재의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허용되는 잠정적인 처분이며, 이러한 가처분을 필요로 하는지의 여부는 당해 가처분신청의 인용 여부에 따른 이해득실관계, 본안소송에 있어서의 장래의 승패의 예상, 기타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법원의 재량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결정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 사건 가처분과 같이 본안판결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내용과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내용의 권리관계를 형성하는 이른바 만족적 가처분의 경우에는, 본안판결 전에 가처분채권자의 권리가 종국적으로 만족을 얻는 것과 동일한 결과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그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통상적 보전처분의 경우보다 높은 정도의 소명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고, 더욱이 이 사건 가처분의 경우에는 본안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게 되는 결과 채권자 1의 생명이 단축되거나 채권자 1이 사망에 이르게 되는 위험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할 것인데, 이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원이 사법절차를 통하여 의료행위에 사전적으로 개입하여 생명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필요성을 인정함에 있어서 더욱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4. 주위적 신청에 관한 판단
가.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무릇 의료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른 승낙에 의하여 시작되고 종료된다고 할 것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고, 환자가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라고 할 것이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즉 환자 스스로 의료행위의 시작과 종료를 결정하고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서, 치료를 계속하지 아니하는 경우 단지 환자의 건강이 회복되는 속도가 늦어진다거나 생명에 위험이 없는 정도로 상태가 악화될 것이 예측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권 또는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는 것인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 보호의 원칙을 고려하여 볼 때 그와 같은 경우까지도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법령 등을 통하여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의 허용 요건이나 시행 방법 등이 엄격하게 규정되고, 사전적·사후적 통제 시스템 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갖추어지는 경우에 그와 같은 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까지도 헌법상 생명권에 기초한 자기결정권으로부터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직접 도출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전통적 생명경외사상 등에 비추어 볼 때 죽음의 선택이나 생명의 단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치료 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인정 여부에 대하여 사회적 합의 또는 승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 및 자살방조를 처벌하고 있는 형법이나, 응급의료종사자에게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라는 공법상의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이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중단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및 아직 뇌사 상태에 이르지 아니한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이 동의하는 경우에도 장기를 적출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등 현행 법률의 입법 취지 등을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들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치료 중단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채권자들의 주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설령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하고, 죽음의 시기가 임박해 있으며, 환자에 대한 치료가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의학적 전문가인 의사나 제3의 기관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확인·진단된 상태에서 환자 본인이 자기결정권의 행사로서 명확하고 분명하게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인바, 아래에서는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이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 여부 및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진지하고도 명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나.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무의미한 치료인지 여부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도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가처분을 구한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채권자 1이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 있음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으나, 의학 기술의 진보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보면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현재의 치료가 단지 생명을 연장시킬 뿐인 것으로서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환자의 상태, 치료 방법, 예후, 후유증 등을 종합하여 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고려해 볼 때 환자가 회복하기 어려운 의식상실 상태인지 여부나 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이 적절한지 등에 관하여는 의학적 전문가로서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주치의 및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다른 의사들의 의학적 진단이 일응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에서 보건대, 채권자 1의 주치의인 채무자 2 또는 객관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른 의사들이 채권자 1의 상태가 객관적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궁극적인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으로서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채권자 1에 대한 보다 적절한 치료 방법이라고 진단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인정할 수 있는 아무런 자료가 없고, 오히려 채권자 1의 주치의인 채무자 2를 포함한 채무자들은 일반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지속되는 경우에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8% 정도 있으므로 채권자 1도 그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며,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는 경우 채권자 1이 12개월 내지 29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 사망이 임박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다투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 1이 자발적으로 눈을 뜨는 정도의 개안 반응이나 비정상적인 굴곡 반응만을 할 수 있고, 동공 및 각막의 반사 반응과 언어 반응 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사정만으로는,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으며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단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다.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의사의 존부
(1) 명시적 의사의 존부
살피건대, 환자의 치료 중단 의사는 원칙적으로 그 치료 중단 당시에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나 채권자 1이 현재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으므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이 사건 가처분 신청 계속 중에 채권자 1이 명시적으로 치료 중단의 의사를 표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채권자들은, 채권자 1의 자녀들인 나머지 채권자들도 이 사건 치료로 인하여 경제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이 침해되고 있으므로 채무자들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설령 이 사건 치료의 중단에 대한 채권자 1의 명시적 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채권자들이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이상 채무자들은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생명을 단축할 수도 있는 치료 중단 결정을 대신할 수 있는 권한이 인정될 수는 없고, 다만 가족 등의 의사가 환자 본인의 진지한 의사와 합치한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환자 자신의 의사로 인정할 수는 있다고 할 것이다(그와 같은 경우에도 가족 등의 의사가 환자 본인의 진지한 의사와 합치한다고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이고, 이 사건에서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가 채권자 1의 의사와 합치된다고 단정할 수 없음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다).
또한, 나머지 채권자들이 채권자 1에 대한 이 사건 치료로 인하여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의료보장을 비롯한 기타 사회보장 장치를 통하여 그와 같은 고통을 덜어 주어야 할 국가적·사회적 필요가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나머지 채권자들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의 법익과 채권자 1의 생명권을 비교 형량할 수는 없다.
따라서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이 나머지 채권자들이 채권자 1을 대신하여 치료 중단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거나,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이 사건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독자적인 권리가 인정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채권자 1의 가족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는 채권자 1의 추정적인 의사를 추단함에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
(2) 추정적 의사의 존부
이 사건과 같이 환자가 의식불명상태에 있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없거나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환자의 생전의 의사표시, 질병 등에 대한 환자의 태도, 종교적 신념, 개인적 가치관 등을 종합하여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이때의 ‘추정적 의사’라 함은 일반적·추상적 의사가 아니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위와 같이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함에 있어서는, 환자 가족들의 개인적인 판단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관계없이 함부로 그 의사를 추단하거나,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에 그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인바,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 치료를 계속할 경우 환자의 상태 변화, 환자가 받게 될 통증, 후유증 등도 종합하여 객관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의사를 추정하여야 할 것이다.
살피건대, 채권자 1이 사전에 문서에 의하여 이 사건 치료와 같은 종류의 치료를 중단하기를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없고, 채권자들이 제출한 소명자료(소갑 1호증의 1 내지 5, 소갑 6호증)는 채권자 1이 나머지 채권자들에게 사전에 구두로 ‘혹시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를 절대 끼우지 말라’거나 ‘소생하기 힘들 때 억지로 기계에 의해 연명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등의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것이나, 위 소명자료는 채권자 1의 자녀들인 나머지 채권자들이 작성한 진술서로서 객관적인 증거라고 보기 어려우며, 설령 위 진술서에 기재된 바와 같이 채권자 1이 평소에 기계 등에 의한 연명치료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장래의 상황을 가상으로 예측하여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형성된 의사일 뿐이므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의 채권자 1의 구체적이고 진정한 의사와 곧바로 합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다.
또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환자가 의학적 전문가인 의사로부터 알기 쉬운 설명을 듣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의료행위를 선택 또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채권자 1이 사전에 질병의 상태나 치료 방법 및 치료 효과 등에 관하여 의사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어 정확하게 인식한 상태에서 기계 등에 의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던 것이라거나, 그와 같이 의사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얻고 정확하게 인식한 경우에도 치료의 중단을 결정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자료도 역시 없다.
위와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채권자 1이 기독교인이고, 남편이 죽음에 임박하였을 때 인위적인 기관절개술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평소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싫어하였다는 등의 채권자들의 주장과 같은 사정만으로는, 이 사건 치료를 거부할 것이라는 채권자 1의 의사를 추정하거나 나머지 채권자들의 의사가 채권자 1의 의사와 부합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
라. 소 결
그렇다면 채권자 1은 원칙적으로 의료행위에 대하여 자기결정권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채권자 1의 생명이 단축되게 되는 것이어서, 자기결정권에 기초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치료 중단의 허용 여부나 허용 요건, 방법, 통제 등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이상, 채권자 1에게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곧바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채권자들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설령 엄격한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 예외적으로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채권자 1의 명백한 치료 중단 의사가 인정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채권자 1의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는 점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없으며, 또한 채권자들이 이 사건 치료를 중단하기 위한 절차로서 이 사건 병원의 윤리위원회의 승인 등도 거치지 아니하였으므로(채권자들이 이 사건 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하기 위한 절차로서 이 사건 병원의 윤리위원회에 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신청하거나,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의 당부에 대하여 다툴 수 있는지 여부는 별론으로 한다),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채권자들의 주장은 어느 모로 보나 이유가 없다고 할 것이다.
5. 예비적 신청에 관한 판단
채권자들은 예비적으로, 채무자들에 대하여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구한다.
살피건대, 환자 및 그 가족들에게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고 스스로의 의사결정에 의하여 원하는 시기에 진료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권리 즉 퇴원할 수 있는 권리도 역시 인정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 있어서의 퇴원과 치료 중단은 사실상 하나의 사실관계의 양면으로 상호 결합되어 있는 것이고, 또한 이 사건 기록과 심문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보면 채권자들의 주장은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이 아닌 다른 의료기관이나 집 등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면서 계속하여 이 사건 치료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 1을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게 한 다음 이 사건 치료와 같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를 일체 하지 않겠다는 것인바,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채권자들의 이 사건 예비적 신청은 채무자들에 대하여 단순히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는 것의 방해 금지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자 1이 이 사건 병원에서 퇴원하고 이 사건 치료와 같이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치료를 중단하는 것의 방해 금지도 함께 구하는 취지라고 할 것이어서, 결국 이 사건 치료의 중단을 구하는 주위적 신청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하여는 채권자 1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채권자 1의 이 사건 치료 중단에 대한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를 확인할 수도 없고, 채권자 1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거나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자료도 부족한 이상 채권자들의 예비적 신청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것이다.
6. 보전의 필요성의 존부에 관한 판단
이 사건 가처분의 경우 본안판결이 확정되기도 전에 이 사건 치료가 중단되게 되는 결과 채권자 1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될 수도 있는 등 그 피해가 영원히 회복될 수 없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가처분의 필요성을 신중하게 인정하여야 할 것임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가처분의 피보전권리에 대한 소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채무자들이 채권자 1의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고 그 사망이 임박한 것도 아니므로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투고 있는 이상, 이 사건 기록에 나타난 사정만으로는 본안소송에서 당사자 사이의 권리 관계에 대하여 확정을 하기도 전에 이 사건 가처분을 명할 보전의 필요성을 소명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할 것이다.
7. 결 론
그렇다면 채권자들의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은 그 피보전권리 및 보전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판사   김건수(재판장) 장윤미 김희진

 

 

 서울서부지법 2008.11.28. 선고 2008가합6977 판결 【무의미한연명치료장치제거등】 항소 〈존엄사 사건〉
[각공2009상,59]


【판시사항】
[1]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연장치료 중단 요구를 의사가 거부할 수 없는 경우
[2]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의식불명의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의사에 대한 인공호흡기제거 청구를 인용한 사례

【판결요지】
[1] 생명연장 치료가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이 될뿐만 아니라 식물상태로 의식 없이 생명을 연장하여야 하는 정신적 고통의 무의미한 연장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수 있는 경우에는, 환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더 부합하게 되어 죽음을 맞이할 이익이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크게 된다. 따라서 의식불명의 식물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는, ① 치료가 계속되더라도 회복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② 환자가 사전에 한 의사표시, 성격, 가치관, 종교관, 가족과의 친밀도, 생활태도, 나이, 기대생존기간, 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하여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함이 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하여 죽음을 맞이할 이익이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크다. 따라서 생명의 연장을 원하지 아니하고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요구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제한되지 아니하고 의사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이에 따른 인공호흡기의 제거행위는 응급의료 중단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의사는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2]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의식불명의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의사에 대한 인공호흡기제거 청구를 인용한 사례.

【참조조문】
[1] 헌법 제10조, 제37조 제2항, 형법 제250조, 제252조, 의료법 제15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제9조, 제10조 / [2] 헌법 제10조, 제37조 제2항, 형법 제250조, 제252조, 의료법 제15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제9조, 제10조

【전 문】
【원 고】 원고 1외 4인(소송대리인 변호사 신현호외 1인)

【피 고】 피고 학교법인(소송대리인 변호사 신동선)


【변론종결】 2008. 11. 6.
【주 문】
1. 피고는 원고 1에 대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
2. 원고 2, 3, 4, 5의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원고 1과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피고가 부담하고, 원고 2, 3, 4, 5와 피고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 2, 3, 4, 5가 부담한다.

【청구취지】 원고 1 : 주문 제1항과 같다.
원고 2, 3, 4, 5 : 피고는 원고 1에 대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
【이 유】
1. 기초 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내지 4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원고 1은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고 피고 산하 ○○ 병원(이하 ‘피고 병원’이라 한다)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이고, 나머지 원고들은 원고 1의 자녀들이다.
나. 원고 1은 2008. 2. 18.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피고 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 등으로 인하여 심정지가 발생하였다. 이에 피고 병원의 주치의 등은 심장마사지 등을 시행하여 심박동기능을 회복시키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였으나 원고 1은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원고 1은 지속적 식물인간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에 있으며, 피고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상태로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를 받아오고 있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곧 사망에 이르게 된다.
2. 원고 1의 인공호흡기 제거 청구에 관한 판단
가. 당사자의 주장
(1) 원고 1의 주장
원고 1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치료의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바, 원고 1은 이미 의식이 회복불가능한 상태로서 현재 원고 1에 대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이 사건 치료는 원고 1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 징후만을 단순히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여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고, 원고 1은 평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사망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바 있어 이 사건 치료의 중단으로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의사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 1에 대하여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야 한다.
(2) 피고의 주장
원고 1은 현재 의식불명으로 그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치료의 중단은 곧 원고 1의 사망을 초래하므로 환자에 대한 생명보호의무가 우선하는 피고 병원은 원고 1에 대한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나. 인공호흡기에 관한 의사(의사, 이하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한 법인을 포함하는 의미로 본다)의 치료중단 의무
(1)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여 모든 기본권의 종국적 목적이자 기본이념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이며 고유한 가치인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인격권·행복추구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어 있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환자가 자기의 생명과 신체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 또한 포함되어 있다. 의사의 진단 또는 치료를 위한 의료행위는 환자가 위와 같이 결정권을 가지는 신체 및 기능에 대한 침해행위를 필수적으로 수반하게 되므로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치료를 받을 것인지 여부 및 치료의 범위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환자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질병이 계속 진행되어 장차 시간이 지나면 사망에 이르게 될 상황이라고 하여도 자기결정권에 기초하여 치료를 시작하지 아니하거나 계속되어 온 치료를 중단하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며, 의사는 환자가 치료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환자의 질병 및 치료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고 이에 기초한 환자의 의사결정에 반하는 치료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할 것이므로, 환자의 자기결정에 기한 치료 중단의 요구가 있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의사는 이에 응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2) 그렇다면 치료행위를 중단함으로써 환자가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도 의사는 환자의 요구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하여 본다.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두고 인간 존엄성의 기초를 이루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국가는 헌법 제10조에 따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어느 누구도 타인의 생명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치료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생명권과 충돌하는 경우 생명의 보호를 위해 그 제한이 불가피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자기결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법률로써 제한되고 있고 있는바, 의료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형법은 그 법률상 제한으로서 아래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의료법〉
제15조 ② 의료인은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하여야 한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②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 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한 때에는 즉시 응급의료를 행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
제9조 ① 응급의료종사자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에 관하여 설명하고 그 동의를 얻어야 한다.
1. 응급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2. 설명 및 동의절차로 인하여 응급의료가 지체되어 환자의 생명에 위험 또는 심신상의 중대한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
제10조 응급의료종사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를 중단하여서는 아니된다.
〈형법〉
제252조 ① 사람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그를 살해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하여 자살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이에 의하면, 응급환자에 대하여 행하는 응급의료는 원칙적으로 환자 본인의 동의를 요하는 것이지만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이 없거나 생명에 급박한 위험 등이 있는 경우에는 설명 및 동의절차를 거치지 아니하더라도 의사는 응급의료를 개시할 의무가 있고, 응급의료를 개시한 후 의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응급의료를 중단하여서는 아니되는바, 어떠한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환자가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환자는 응급환자라고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치료의 중단은 생명보호의 원칙 및 형법상 자살관여죄 등 처벌규정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원칙적으로 중단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봄이 상당하여 환자가 그 치료의 중단을 요구하더라도 의사는 이에 응할 의무가 없으므로, 환자의 치료에 관한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이러한 범위에서 생명 보호에 근거하여 위 법률들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상황에 있는 환자의 경우에도, 의사는 치료중단의 방법으로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환자의 요구에 원칙적으로 응할 의무가 없다고 할 것이다.
(3) 그런데 인간은 그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맞게 되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생명권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기는 하나 정상적으로 생존해 있는 동안뿐만 아니라 그 생을 다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죽음의 순간에도 구현되어야 하는 궁극적 가치이고, 특히 의학기술의 발달로 의료장치에 의한 생체기능의 유지 및 생명의 연장이 가능해진 오늘날에는 생명연장 치료가 회복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식물상태로 의식 없이 생명을 연장하여야 하는 정신적 고통의 무의미한 연장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인격적 가치를 해할 수 있는바, 이와 같은 경우에는 환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더 부합하게 되어 죽음을 맞이할 이익이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크게 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의식불명의 식물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는, ① 치료가 계속되더라도 회복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② 환자가 사전에 한 의사표시, 성격, 가치관, 종교관, 가족과의 친밀도, 생활태도, 나이, 기대생존기간, 환자의 상태 등을 고려하여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함이 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하여 죽음을 맞이할 이익 생명을 유지할 이익보다 더 크다고 할 것이어서, 생명의 연장을 원하지 아니하고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요구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행사는 제한되지 아니하고 의사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이에 따른 인공호흡기의 제거행위는 응급의료 중단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것으로 의사는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4) 의사가 환자의 치료중단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경우, 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0조의 정당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에 관한 실체적, 절차적 요건은 입법으로 자세히 규정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하겠으나, 구체적 입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치료거부권 및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 존엄을 추구할 권리는 헌법에서 직접 도출되는 권리로서 생명보호의 원칙과의 충돌 및 이익형량을 고려한 법 해석상 위와 같은 최소한의 요건이 설정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이에 추가적 요건을 두거나 요건을 강화하는 입법 역시 그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 이 사건 인공호흡기 제거청구에 관한 판단
원고 1은 현재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로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피고가 원고 1의 청구에 따라 원고 1에 대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위에서 본 요건을 충족하여야 할 것이므로 이에 관하여 본다.
(1) 회복가능성 및 치료의 의학적 무의미성
회복가능성 및 치료의 의학적 무의미성에 관한 판단은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뿐만 아니라 제3의 중립적 의료기관에 의한 의학적 진단을 토대로 하여 환자의 생명 회복(생명연장치료장치의 항시적인 도움없이 생존할 수 있는 상태) 및 의식 회복의 가능성과 치료의 의학적 의미에 대한 규범적인 판단이 되어야 할 것으로, 갑 제4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기재, 증인 소외 1, 2의 각 증언, 이 법원의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 결과, 이 법원의 서울대학교병원장, 서울아산병원장에 대한 각 신체감정촉탁 결과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의학문헌(Plum and Posner’s Diagnosis of Stupor and Coma 4th Edition, 2007)에 의하면 통상적인 지속적 식물상태 환자의 경우 상태발생 후 3개월 내지 6개월이 경과한 시점의 경우 의식이 돌아올 확률이 0% 내지 8%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환자의 상태와 뇌손상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일반적인 추정치로서 뇌영상 촬영이 없는 신경과적 검진을 토대로 한 것이다.
(나) 원고 1은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지속적 식물상태에 빠진 2008. 2. 18. 당시 자발호흡이 거의 없는 상태로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는 호흡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대뇌의 인지 기능의 상실로 의식이 없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며 자발적으로 눈을 뜨고 외부의 자극에 움직이는 반사 반응을 보이는 등 뇌간 기능의 일부만 유지되고 있었으며, 2008. 4. 18. 시행한 뇌파검사는 심한 미만성 뇌기능 이상 소견을 보였다.
(다) 현재 원고 1은 만 76세의 고령으로서 식물상태 발생 후 8개월이 경과하였음에도 의학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자발호흡이 불가능하여 인공호흡기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호흡을 하고 있고, 자발적으로 눈을 뜨기는 하나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고 통증 자극에 대하여는 팔다리의 반사적 반응은 있으나 얼굴 표정이나 안구 운동에서 반응을 보이지 아니하며, 동공은 대광반응이 없고 안구의 시선은 양쪽이 모두 우측 상향으로 치우쳐져 있으며 바빈스키 징후도 비정상이다.
(라) 원고 1에 대하여 2008. 10. 16. 시행한 뇌 MRI 검사에 의하면 뇌는 전반적으로 심한 위축을 보이고 있고 대뇌 피질이 파괴되어 있으며 기저핵 및 시상의 구조가 보이지 아니하고 뇌간 및 소뇌도 심한 손상으로 위축되어 있는데 다만 뇌간 기능의 일부가 살아 있음으로 인하여 자발적인 눈뜨기와 팔다리의 반사적인 운동을 보인다.
(마) 원고 1은 뇌간 기능의 일부가 유지되고 있고 뇌파의 평탄화현상이 없으므로 뇌사상태라고 할 수는 없으나, 식물상태의 발생이 외상이나 대사장애에 기인한 경우와 비교할 때 예후가 가장 나쁜 심호흡 정지에 기인한 경우로서 자발 호흡도 불가능하므로 통상의 지속적 식물인간상태보다 더 심각하여 뇌사에 가까운 상태이다.
(바) 원고 1의 담당 주치의인 의사 소외 1은 원고 1의 위와 같은 현재 상태를 감안할 때 의식의 회복가능성은 5% 미만이라고 보고 있고, 원고 1에 대한 진료기록을 감정한 서울대학교병원 의사 소외 3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으며, 원고 1의 신체를 감정한 서울대학교병원 의사 소외 4 역시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있고, 원고 1의 신체를 감정한 서울아산병원 의사 소외 2 또한 원고 1은 이미 대뇌 피질이 파괴되어 있으므로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고 자발호흡을 하게 될 가능성도 없으며, 최선의 회복을 한다고 하더라도 의식 및 자발적인 움직임의 회복은 불가능하며 호흡을 하고 눈을 깜박이는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식물상태로의 회복만을 상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 통상적인 지속적 식물인간상태의 경우 기대생존기간은 2년 내지 5년이나, 원고 1은 자발호흡이 불가능하고 뇌손상의 범위가 커 통상적 식물상태보다 더 심각한 상태이므로 기대생존기간은 더 짧아질 수 있으며, 의사 소외 2는 원고 1의 기대생존기간을 식물상태가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 현재로부터 3 내지 4개월 이내로 보고 있다.
위 인정 사실에 의하면, 원고 1이 현재 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인공호흡기 등의 항시적인 도움없이 생존이 가능한 상태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것이고, 현재 원고 1에 대하여 시행되고 있는 인공호흡기 부착의 치료행위는 원고 1의 상태 회복 및 개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치료로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고 봄이 상당하다.
(2) 환자의 의사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기한 치료 중단 의사는 원칙적으로 그 치료 중단 당시 질병과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았음을 전제로 하여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유효하다고 할 것이나, 환자가 질병으로 의식불명의 상태에 처한 경우에까지 중단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표시되어야 한다고 볼 것은 아니고 의식불명의 환자가 현재 자신의 상태 및 치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았더라면 표시하였을 진정한 의사를 추정하여 그 추정된 의사에 기한 자기결정권의 행사가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의사의 추정에 관하여, 환자가 의사능력을 상실하기 전에 서면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를 명확히 나타낸 바가 있다면 그 서면에 의한 의사는 현재 환자의 의사를 고도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나, 의사가 서면에 의하여 명확히 표시될 것을 요구하는 입법이 없는 이상, 그러한 서면이 없다고 하여 바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없다고 배척한다면 건강할 때 자신의 희망을 명확히 작성해 둔 자만이 원치않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결과가 되므로 이와 같이 볼 것은 아니고, 환자가 사전에 가족, 친구 등에 대한 구두의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 태도와 환자의 현재 상태, 기대생존기간,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재 상황에서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의 의사가 추정될 수 있는지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갑 제1호증(가지번호 포함)의 기재, 증인 소외 5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 1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3년 전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임종을 맞게 될 무렵 며칠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하고 그대로 임종을 맞게 하였던 사실, 당시 가족들에게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 사실, 환자가 병석에 누워 간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장면 등을 텔레비전을 통하여 볼 때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이생을 떠나고 싶다”라고 말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에 의하면 원고 1은 평소 생명연장치료를 받지 아니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였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위 각 채용 증거에 의하면 15년 전 교통사고로 팔에 상처가 남게 된 후부터 이를 타인에게 보이기 싫어하여 여름에도 긴 팔 옷과 치마를 입고 다녔던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에 의하면 원고 1은 항상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에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은 원고 1의 현재 상태 및 회복가능성에 관한 사정, 원고 1의 기대생존기간을 식물상태가 발생한 날로부터 1년 이내, 현재로부터 3 내지 4개월 이내로 보고 있는 점, 원고 1의 현재 나이가 76세인 점 등을 더하여 보면, 원고 1은 현재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사를 가지고 이를 표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3) 소 결
따라서 원고 1은 피고에 대하여 자신에게 부착된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피고는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
3. 원고 2, 3, 4, 5의 인공호흡기 제거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위 원고들은 원고 1에 대한 치료와 관련하여서는 가족들인 위 원고들의 권리 및 이해관계도 고려되어야 하는 것인데, 인공호흡기를 계속하여 부착하는 것은 위 원고들에게 경제적·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야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권, 건강권, 재산권 등을 침해하므로 위 원고들도 독자적으로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근거를 가지는 것으로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에 대한 생명연장치료로 인하여 경제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관한 입법이 없는 한 타인의 생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치료 중단을 청구할 독자적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위 원고들 역시 독자적으로 원고 1에 대한 이 사건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청구할 권원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할 것이어서 위 원고들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다만, 가족들은 이 사건에서와 같이 가족 중 1인이 환자의 특별대리인으로 선임되어 환자의 추정된 의사에 근거하여 치료의 중단을 소송상 청구함으로써 그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위 원고들은 원고 1에 대한 진료계약을 해지하였으므로 그에 기하여 피고는 위 원고들에 대하여도 이 사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진료계약은 환자가 의사에게 질병의 치료 등 의료행위를 위탁하고 의사는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일종의 위임계약으로서 이는 보호자가 환자를 위해 진료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와 같이 제3자를 위한 계약의 형태로 체결될 수도 있는바, 이러한 경우 환자인 제3자에 대한 의료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제3자의 동의 내지는 수익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제3자가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에는 의학상·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진료에 대하여 제3자의 수익의 의사표시가 추정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이와 같은 진료계약은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라 또는 환자의 신체에 대한 침습을 전제로 하는 치료행위 및 그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게 되는 계약의 성질에 비추어 보더라도 계약당사자가 이를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할 것이나, 제3자를 위한 진료계약에서 보호자 등 계약당사자가 계약을 해지한다고 하여 바로 환자인 제3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의무가 소멸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치료의 계속 및 중단은 여전히 환자 본인의 의사에 따라야 할 것이며 이 경우 환자와의 새로운 진료계약이 성립될 수 있고 환자 본인의 의사가 불명한 경우 민법상 사무관리에 근거하여 치료의 계속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먼저, 원고 3, 4, 5가 피고와 사이에 원고 1에 대한 진료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에 대하여는 아무런 주장·입증이 없으므로 위 원고들의 진료계약 해지에 기한 청구는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원고 2의 진료계약 해지에 기한 청구에 관하여 보면, 갑 제4호증의 5의 기재, 증인 소외 6의 증언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원고 1의 딸 원고 2는 원고 1이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2008. 2. 18. 피고와 사이에 원고 1을 중환자실에 입실시켜 ‘환자의 상태에 따라 동맥혈관 내 도관 삽입, 중심정맥혈관 내 도관 삽입, 기관 내 삽관 및 인공환기기, 기관절개술, 혈액투석 등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함에 동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진료계약(이하 ‘이 사건 진료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원고 2가 2008. 3월경부터 피고에 대하여 이 사건 진료계약을 해지한다는 의사를 표시하여 온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원고 2는 원고 1이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당시 수익자인 원고 1을 위하여 이 사건 진료계약을 체결하였고 당시 원고 1의 수익의 의사는 의학상·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이므로 추정될 수 있다고 할 것이며, 그 후 원고 2의 의사표시로 이 사건 진료계약은 해지되었다고 할 것이나, 이 사건 진료계약이 해지되었다고 하여 피고의 원고 1에 대한 치료의무가 바로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고, 특히 원고 1은 이 사건 인공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므로 피고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원고 1에 대하여 인공호흡기를 부착하는 치료를 계속할 의무가 있으며, 다만 앞서 본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원고 1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근거한 청구에 의하여 치료를 중단할 수 있을 뿐이므로, 피고는 원고 2에 대하여 진료계약의 해지를 원인으로 하여 이 사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어서 원고 2의 위 청구 역시 받아들이지 아니한다.
4. 결 론
그렇다면 원고 1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며, 가집행의 선고는 청구의 성질상 붙이지 아니함이 상당하므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김천수(재판장) 홍예연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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